방화주의 리얼리즘

ESP32 

윤장호
2025, 모터드라이버, 서보모터, PETG, PLA, 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탄소섬유, 베어링

윤장호는 입체·설치와 기계적 구성요소를 통해 감정을 직접 재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가시화한다. 일견 키네틱의 문법을 따르지만, 그의 장치는 움직임 자체보다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간극, 예컨대 예민함, 긴장, 미세한 불편 등을 채집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정확히 조율된 반복 동작, 혹은 얼어붙은 듯 멈춘 자세가 감정의 온도를 바꾸는 순간들을 호출한다. 작가는 차가운 재료와 공학적 구조물을 정교한 억제와 주저를 수행하는 은유적 퍼포머로 간주하며, 이를 ‘감정기계’라 부른다.

산업적 물성과 반(半)유기체적 형상으로 구축된 감정기계는 기능의 유무나 동작 여부와 무관하게 관객의 신체에 미세한 반응을 일으킨다. 여기서 기계는 도구나 기교로 환원되지 않는다. 기술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던 감응의 간극을 매개하는 존재, 곧 정서의 환경을 설계하는 조율자로 제안된다. 과장된 테크놀로지의 숭배도, 예술에서 기술을 배제하려는 금욕도 피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이 동일한 감각 장(場)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조형적 조건을 시험한다.

현재의 프로젝트에서 그는 불안을 하나의 선적(線的) 정서, 말하자면 지속적으로 팽팽해지는 장력의 흐름으로 파악한다. 축적되는 긴장은 형상과 비형상 사이를 진동하며 물질 속에 흔적으로 남고, 감정기계는 그 흔적을 느리게, 때로는 거의 보이지 않게 편집한다. 모터의 미세한 맥동, 스프링의 한계각, 정지에 가까운 정류(整流)가 불안의 구조를 드러내는 악보가 된다. 윤장호의 작업은 결국 다음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감정은 어떻게 기계의 몸체를 거쳐 우리의 신체로 귀환하는가? 그리고 그 왕복의 시간에서 감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