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주의 리얼리즘

탈토대라는 광야에 세워진 복잡하고 기괴한 중간체

이지훈
2025, 실리콘 시트, 폴리카보네이트 시트, 3D 프린터 필라멘트, 볼트, 너트, 폴리우레탄 폼, 금박, 케이블 타이, 호스, 모터, 냉각수, 아크릴 시트, 150 x 200 x 220(h) cm


환원 불가능한 단독적 위치

이지훈
2025, 실리콘 시트, 폴리카보네이트 시트, 3D 프린터 필라멘트, 볼트, 너트, 폴리우레탄 폼, 은박, 케이블 타이, 호스, 모터, 냉각수, 아크릴 시트, 40 x 30 x 180(h) cm


 
흔히 세포 자살(programmed cell death, PCD)이라 불리는 생물학 용어인 아포토시스(apoptosis)는 세포가 스스로 생명 주기를 마무리하는 정교한 기전으로, 생명체의 성장·발달·항상성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포가 외부 손상으로 인해 비의도적으로 죽는 괴사(necrosis)와 달리, 아포토시스는 질서 있고 통제된 세포 사멸 메커니즘을 따른다. 유기체는 세포 변이 과정에서 DNA 손상이나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유전적으로 정립된 질서를 바탕으로 방어 메커니즘인 아포토시스를 작동시켜 내적 평형(internal equilibrium)을 회복한다.

〈탈토대라는 광야 위에 세워진 복잡하고 기괴한 중간체, 2025〉는 이러한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조각에 적용한 사례로, 아포토틱 바디(apoptotic bodies)의 형성이 제한된 상황, 즉 아포토시스의 부재 상태를 시각화한다. 작품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해부학적 방향성이 아니라, 사멸되어야 할 세포가 살아남아 기존 세포와 결합·적층되며 생성되는 비의도적 덩어리로서,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역방향의 생성 이미지를 표방한다. 아포토시스 결핍으로 생성된 부산물(조각)은 반응이 완결되기 전 잠시 존재하는 중간 산물 또는 전이 상태인 ‘중간체’로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끊임없이 증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아포토시스가 억제된 상태의 조형적 표현은 외형적으로 기괴함을 가졌지만 단일한 톤과 매체적 연결성 속에서  정제된 조각으로 인식된다. 형태적 복잡성을 띄고 있지만 작품 중앙의 중심체(구)를 축으로 각 개체(늑골)가 결합된 삼항 구도(triadic composition)를 형성한다. 이 전통적 구도는 조각적 시선에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와 같은 시각성은 각자의 미감과 취향이 다를지라도, 그 자체가 정상적인 형태이자 완결된 단독 조각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도록 의도된다.

*세포가 작은 소체나 조각으로 분화되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중단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