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주의 리얼리즘

Non-Strata

최인영
2025,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1분 22초


Non-Strata는 바다모래를 하역하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포크레인과 크램쉘 버킷 굴착기의 새벽 작업을 기록한 영상이다. 포크레인의 독무(獨舞) 같은 기계적 리듬, 카메라를 향해 쏘아지는 전조등의 역방향적 응시, 새벽의 어스름, 그리고 하역장이라는 비일상적 장소가 교차한다. 이 영상은 반복되는 추출과 낙하, 붕괴와 축적의 사이에서 감각의 잔재가 어떻게 표면에 머물다 사라지는지를 추적한다.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모래는 안착하지 못한 채 흘러내리며, 결국 ‘지층(strata)’을 이루지 못한 비응결의 물질, 축적되지 못한 감각의 상태로 남는다.

이때 모래는 단순한 풍경의 대상이 아니라, 추출의 물류 회로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바다에서 기계로 옮겨진 모래는 여전히 고정되지 않은 흐름으로, 장소화와 의미화를 거부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몸의 상태, 고통과 균열을 통해 드러나는 신체의 파편성과도 맞닿는다. 물의 몸처럼, 모래 역시 형성 이전의 물질적 감각으로 존재하며, 영상은 이를 재현하거나 의미화하기보다 표면 위에 부유하는 단위들의 운동을 따라간다. 그것은 언제나 고정과 해체, 출현과 소멸 사이의 문턱에 머무는 수성적 리미널리티다.

모래의 추출과 낙하, 그 끊임없는 흩어짐은 통증 속에서 응결되지 못하는 신체의 경험과 공명한다. 오랫동안 대상화되고, 추출되고, 균열 속에서 파편화되어 온 몸. 그러나 이 파편성은 결핍이 아니다. 새로운 감각적 연결을 허락하는 틈이다. 카메라를 드는 나 역시 그 속에 위치한다. 찍는 행위가 언제나 폭력의 가능성을 내장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나의 시선은 주저하고 머뭇거린다. 윤리적 불안 속에서만 가능한 촬영, 그것이 곧 이 영상의 고백이다.

(글. 최인영)